여자축구선수로서의 삶 이후, 진로 전환의 경험과 조언
“축구선수는 은퇴 후에 뭘 하세요?”
제가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궁금증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질문이었습니다.
여자축구선수로서의 삶을 마무리한 뒤, 저는 오히려 처음으로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수일 때는 하지 못했던 것들, 몰랐던 나의 취향, 가능성, 방향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지금의 이야기를, 조금 솔직하게 풀어보려 합니다.
이 글이 현재 선수로 뛰고 있는 분들, 은퇴를 고민하는 분들,
그리고 스포츠 이후의 삶이 궁금한 분들께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은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습니다
축구선수는 누구나 언젠가 은퇴합니다.
하지만 은퇴가 언제, 어떻게, 무슨 감정으로 다가올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저에게 은퇴는 계획했던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여건들이 하나씩 다가오면서 조금씩 결정된 결과였습니다.
- 그라운드 출전 횟수가 줄어들었고
- 그로인해 축구에 대한 열정이 식어갔고,
- 동시에 내가 놓쳐온 ‘삶의 다른 부분들’이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 인생의 90%는 ‘운동장’에서만 이뤄졌구나.”
그 순간, 저는 운동장이 아닌 곳에서도 나를 살아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제가 진짜 ‘은퇴’를 받아들이게 된 계기였습니다.
2. 은퇴 후 처음 느낀 감정은 ‘자유’가 아니라 ‘공허함’이었습니다
– 멈춰 선 시간 속에서 진짜 ‘나’를 마주하다
축구선수 시절, 은퇴는 항상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매 시즌이 끝나면 “내년엔 더 잘하자”라는 다짐이 있었고,
몸이 아파도 "조금 쉬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텨왔기 때문에
정작 은퇴라는 현실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운동장에서 물러나는 마지막 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저는 자유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제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나야 하지?”
“훈련이 없으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지?”
“내가 더 이상 선수가 아니라면… 나는 이제 누구지?”
머릿속에서 이런 질문들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들 뒤에는 깊은 공허함이 조용히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 모든 루틴이 사라졌습니다 – 시간은 많은데 할 게 없었습니다
선수로 살았던 수년 동안, 제 하루는 철저히 정해진 루틴 속에 있었습니다.
- 아침 기상 → 아침 식사
- 오전 훈련 → 점심 → 낮잠
- 오후 훈련 → 저녁 → 아이싱
- 다음날 경기 준비
이 구조가 무너지는 순간,
처음에는 마치 방학이라도 얻은 것처럼 여유롭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 여유는 오랫동안 익숙했던 리듬이 무너졌을 때 찾아오는 정서적 혼란으로 곧 바뀌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비어 있었고,
시간이 많지만 그 시간 안에서 “무엇을 해야 의미가 있을까?”를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시작되었습니다.
▶ 특히 이런 순간이 힘들었습니다:
- 오전 8시, 자동으로 눈이 떠졌지만 훈련장이 아닌 방 안에 있을 때
- 식사 후 뭐 해야 할지 몰라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
- 친구나 가족이 “이제 좀 쉬어서 좋겠다”고 말할 때
→ 쉬는 게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 ‘선수’라는 정체성이 사라진 후, 스스로가 낯설어졌습니다
축구선수로 살아왔던 저에게 ‘선수’라는 타이틀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이었습니다.
- 사람들은 저를 '다혜 선수'라고 불렀고
- SNS에서도 유니폼을 입은 제 모습이 대부분이었고
- 제 하루는 항상 경기를 기준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 그 외의 삶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그 모든 배경이 한 번에 사라졌습니다.
- 유니폼을 벗은 나는 누구인지
- 축구가 없는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
- 운동장이 아닌 곳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으니, 저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두려워졌습니다.
은퇴가 ‘몸이 멈추는 일’이 아니라
‘정체성을 잃는 감정적인 충격’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주변의 시선은 따뜻했지만, 오히려 더 외로웠습니다
의외로 은퇴를 알렸을 때,
주변 사람들은 “고생 많았어”, “이제 좀 쉬어야지”, “앞으로 뭐 하고 싶어?” 같은 따뜻한 말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 말들이 고맙고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그 말들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 그 따뜻함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고
- “앞으로 뭐 할 거야?”라는 질문에는 아직 대답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며
- “이제 자유롭겠네”라는 말에는 도리어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자유롭다’는 말이 이상하게 슬펐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유가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공백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 그 공허함 속에서 내가 처음으로 해봤던 일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막막하고 허전한 시기 덕분에
저는 선수로 살았을 땐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처음으로 시도하게 됐습니다.
- 연기학원 다녀보기
- 카페 일 해보기
- 바디프로필 찍어보기
- 여러 사교적 모임에 참석해보기
- 카페에 앉아 창밖 구경하기
- 시합이 아니라 여행으로 떠나보기
이런 사소한 경험들을 통해 저는 조금씩
“운동장이 아니어도 나는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공허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가능성’이라는 감정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 지금 돌아보면, 그 공허함도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은퇴 직후의 공허함은 결코 나약함이나 실패가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오랫동안 특정 역할에 헌신했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비로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막 은퇴한 시점에 있다면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느끼는 공허함은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에요.
그건 오히려 당신이 정말 진심으로 선수로 살아왔다는 증거예요.”
✅ 공허함을 지나야 ‘나’로 설 수 있습니다
축구선수로 살아온 시간은 단단하고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만으로 나를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은퇴는 정체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처음엔 공허하고 불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안에서 진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저는 이제 ‘은퇴한 여자축구선수’가 아닌,
‘축구를 경험한 한 사람’으로서 다시 삶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3. 나는 ‘축구선수 출신’ 이전에, 그냥 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 ‘선수’라는 옷을 벗고 나서야 진짜 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축구선수로 살아왔던 시간 동안,
저는 줄곧 ‘운동선수’라는 정체성으로만 나 자신을 정의해왔습니다.
- “나는 축구선수야”
- “나는 운동만 잘해”
- “나는 경기장에서 말로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야”
- “나는 땀 흘리는 게 가장 나다운 모습이야”
이런 식의 자기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스스로도 축구를 제외한 다른 모습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도 저를 항상 ‘축구선수’, ‘운동하는 언니’, ‘축구 잘하는 사람’으로만 불렀고,
어느 순간 저는 그 역할 안에 스스로를 꼭 가둬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축구선수일 땐 ‘내가 누구인지’보다 ‘뭘 잘하는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선수 시절의 삶은 항상 성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 얼마나 잘 뛰었는지
- 몇 골을 넣었는지
- 오늘 컨디션은 어떤지
- 코치님의 기대에 부응했는지
이런 기준들이 하루하루를 결정짓는 핵심이었기 때문에,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감정을 자주 느끼는 사람인지는
뒤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저는 그저 ‘축구를 잘하는 기계’처럼 스스로를 다뤘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아요.
✅ 은퇴 후, 그 껍질이 벗겨졌을 때 나는 ‘공허함’과 함께 ‘해방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은퇴하고 처음 몇 주는 어색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자,
문득 ‘누가 날 축구선수라고 부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 축구화를 신지 않아도
- 운동장을 가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아주 조금씩 체감하게 됐습니다.
▶ 이런 일들이 새로운 나를 열어줬습니다:
그렇게 ‘세상 속의 한 사람’으로 숨 쉬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운동 말고도 좋아하는 게 꽤 많았구나”라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 내가 축구선수였다는 건 사실, 나의 ‘부분’일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운동선수는 은퇴하면 공백기가 클 것 같아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공백 속에서 새로운 자리가 생겨난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자축구선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의 전부는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사람이고, 누군가의 딸이고, 친구이고,
음악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고,
여전히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 진짜 ‘나’를 만나는 여정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의미 있었습니다
축구선수일 때는 항상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살았습니다.
잘해야 했고, 결과를 만들어야 했고, 꾸준히 유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비로소 처음으로 ‘내가 나를 위해 사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는 시간
-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내리는 시간
- 좋아하는 책의 밑줄을 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이 모든 순간들이
저에게는 운동보다 더 진한 감정과 자율성을 주었습니다.
✅ 운동을 잘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세상 안에서 ‘나’로 존재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가 저를 ‘○○선수’라고 부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호칭이 없어도 저는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고,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훨씬 단단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선수의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그 시간에만 갇히지 않겠다는 다짐도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선수였던 나, 그리고 지금의 나는 ‘연결된 하나’입니다
사람은 어떤 역할 하나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운동선수’라는 역할은 분명 저에게 자랑스러운 시간이었고,
그 시간은 저의 일부로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축구선수 출신’이라는 말을 넘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한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옷을 입든, 어떤 일을 하든
나는 여전히 나답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은퇴 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4. 나는 어떤 길을 택했을까? – 은퇴 후의 직업 선택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뭐 하세요?”라고 물어볼 때,
그 질문은 사실 단순한 직업을 묻는 게 아니라
“어떻게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나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무작정 축구와 거리를 두는 선택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해온 것을 버릴 필요는 없고,
오히려 ‘내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게 진짜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 유소년 , 성인 축구 코치
- ✔ 여자축구 저변 확대 활동
- ✔ 블로그 콘텐츠 제작 (축구 + 선수 경험 + 심리 + 생활)
- ✔ 인터뷰 참여
- ✔ 필라테스 강사
저는 지금 ‘축구’는 하지 않지만,
여전히 축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 방식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5. 선수 은퇴 후 가장 크게 필요한 것: ‘정체성 전환의 시간’
축구선수로 살아온 시간은 너무 특별합니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이 은퇴 후
‘나는 이제 뭘 잘하지?’, ‘내가 축구 말고 뭘 좋아했더라?’ 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이건 누구나 겪는 당연한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답해도 됩니다.
▶ 제가 권해드리고 싶은 과정은 이렇습니다:
- 은퇴 직후엔 ‘일단 쉬세요’
– 압박 없이, 스스로를 다시 느껴볼 시간 - 좋아했던 것들을 다시 해보세요
– 음악, 영화, 사람들 만나기, 쉬는 것도 하나의 회복 - 하고 싶었던 일을 작게 시도해보세요
– SNS 콘텐츠 만들기, 글쓰기, 공부 시작하기 - 축구를 버리지 마세요
– ‘경쟁’에서만 벗어나면, 축구는 여전히 든든한 자산이 됩니다
6.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 은퇴는 끝이 아니라 방향 전환입니다
축구선수는 누구나 은퇴합니다.
하지만 어떤 태도로 은퇴하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집니다.
축구를 못해서 은퇴하는 게 아닙니다.
인생의 다음 챕터를 열기 위해 멈추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축구를 통해 끈기, 책임감, 집중력, 사람과의 협업, 감정 조절을 배웠고,
이 모든 능력은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에도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7. 선수였던 시간은 내 인생의 자산입니다
이제 저는 축구선수로 불리진 않지만,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는 가장 든든한 뿌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은퇴는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선수였기에 더 단단하고 진정성 있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 은퇴 후 삶을 준비하는 선수들을 위한 조언 요약
은퇴 시기 |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누구에게나 옵니다. |
첫 단계 | 쉬면서 ‘나’를 다시 느껴보세요. |
진로 탐색 | 너무 넓게 고민하지 말고, 작게 실험해보세요. |
축구 활용 | 코칭, 콘텐츠, 교육, 홍보 등 다양한 길이 있습니다. |
핵심 | 내 경험은 ‘가치 있는 자산’입니다. 버리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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